[채규만 교수] 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6 : 사춘기 자녀와 대화하기

채규만 교수
한국 및 미국 임상심리 전문가 | 성신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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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6:
사춘기 자녀와 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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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아이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며 재잘거리던 아이가, 이제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 말을 걸어도 "몰라요," "괜찮아요," "그냥요"라는 단답형 대답만 돌아옵니다. 부모님들은 당황스럽고 섭섭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혹은 "저 아이가 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시카고 교민 가정에서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오늘은 사춘기 자녀의 뇌와 감정을 이해하고, 문을 닫지 않는 대화를 만들어 가는 방법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사춘기 자녀의 뇌는 지금 "공사 중"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감정적으로 폭발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말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사춘기 청소년의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아직 발달 중입니다. 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 부분은 놀랍게도 25세 전후까지 완성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감정과 본능을 담당하는 변연계(limbic system)는 이미 매우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춘기 자녀의 뇌는 감정의 불꽃은 세게 타오르는데, 그 불을 조절하는 소화기는 아직 작동이 서툰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여기에 더해 이중 문화의 긴장감까지 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미국 문화, 집에서는 한국 문화, 교회에서는 또 다른 기대와 규범이 존재합니다. 이 아이들은 세 개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여정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모든 대화의 출발점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녀, 어떻게 소통할까요?
많은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는 도대체 말을 안 해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자녀는 말하고 싶어합니다. 다만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혹은 말해봤자 잔소리나 비판으로 돌아올 것 같을 때, 입을 닫는 것입니다.
자녀가 말문을 여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입니다. 자녀가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그래서 네 잘못이잖아," "왜 그런 생각을 해?" 같은 반응이 반복되면, 아이는 점점 입을 닫습니다. 둘째는 타이밍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막 돌아온 직후, 혹은 배가 고플 때나 피곤할 때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간식을 먹는 시간처럼 가벼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셋째는 질문의 방식입니다. "학교에서 뭐 했어?"처럼 보고를 요구하는 질문보다는 "요즘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뭐야?" 혹은 "요즘 힘든 게 있어?"처럼 감정과 경험에 초점을 맞춘 질문이 대화의 문을 열어줍니다.
▲잔소리가 아닌 경청으로
부모님 입장에서 잔소리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게임 좀 그만 해라," "친구 조심해라"... 이 모든 말들은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자녀의 귀에는 이것이 어떻게 들릴까요? "너는 항상 부족해," "나는 너를 믿지 않아"로 들릴 수 있습니다.
경청은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의 뒤에 있는 감정을 듣는 것입니다. 자녀가 "학교 진짜 싫어"라고 말할 때, "왜?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고 즉각 반응하는 대신, "많이 힘들구나,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봐 주세요. 자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언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대부분의 청소년은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을 원합니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기
한국 문화에서는 감정 표현이 약함의 표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걸 가지고 울어?" "남자가 그러면 안 되지" "별것도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굴지 마"... 이런 말들은 자녀에게 "내 감정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감정은 그저 감정일 뿐입니다. 자녀가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고 할 때, "그 친구가 잘못한 거야, 네가 잘못한 거야?"를 따지기 전에 "많이 속상했겠다, 그랬구나"라고 먼저 말해주세요. 이 짧은 한 마디가 자녀에게는 "엄마 아빠가 내 편이구나"라는 큰 안도감을 줍니다. 감정이 인정받으면, 그때야 비로소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공감은 동의가 아닙니다. "네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 "네 행동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감정을 먼저 인정해준 후에,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문을 닫지 않는 대화를 위하여
▲대화는 한 번의 긴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짧은 순간들의 축적입니다. 매일 저녁 식사 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5분간 눈을 마주치는 것, 자녀의 방문에 노크하고 "오늘 어땠어?"라고 한마디 건네는 것, 자녀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유튜브 채널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여 신뢰의 다리가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가 언제든지 부모님을 찾아올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실수해도 괜찮다, 힘들 때 말해도 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엄마 아빠는 내 편이다, 라는 확신이 생길 때 자녀는 비로소 방문을 열고 나옵니다.
사춘기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어렵고 긴 터널입니다. 그러나 이 터널을 함께 통과한 가족은 더 깊은 신뢰와 유대감을 갖게 됩니다. 오늘 저녁, 자녀에게 한 마디 먼저 건네보시겠습니까?
필자는 시카고에서 40년 이상 목회와 임상심리 상담을 병행해 온 기독교 상담가로, 한인 이민 가정의 부부·가족·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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