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규만 박사] 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12: 사춘기 자녀와 대화하기 — 닫힌 문을 여는 대화의 기술

채규만
임상 심리학 박사 · 한국 및 미국 임상 심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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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이민 가정 만들기 12:
사춘기 자녀와 대화하기 —
닫힌 문을 여는 대화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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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식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요즘 학교는 어때?'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그냥'이라고 한 마디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던 아이가 이제는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시카고에서 상담실을 찾아오신 한 어머님의 하소연입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이민 가정 부모님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자라 유교적 가정 문화에 익숙하신 부모님 세대에게 미국에서 자란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은 이중의 벽, 즉 세대의 벽과 문화의 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사춘기 자녀와 '문을 닫지 않는 대화'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춘기 자녀의 뇌는 '공사 중'입니다
먼저 자녀의 변화가 부모를 향한 반항이나 거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뇌 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대략 10세에서 25세까지)는 뇌가 가장 급격하게 재편성되는 시기입니다. 특히 판단력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25세 무렵에야 완성되는 반면, 감정과 보상을 처리하는 편도체(amygdala)와 도파민 회로는 이미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춘기 자녀는 두뇌의 감정 브레이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엑셀은 최대로 밟히는 자동차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작은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며,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부모보다 또래 집단의 인정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이는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진화시켜 온 정상적인 발달 과정입니다.
부모님께서 "우리 아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라고 낙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는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공사 기간'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녀와 소통하기
사춘기 자녀가 입을 닫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두려운 것입니다. 시험 성적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러게 왜 공부 안 했어?"라는 핀잔을 들었거나, 친구 이야기를 했다가 "그런 애는 사귀지 마라"는 평가를 받은 경험이 쌓이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입을 닫게 됩니다.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제안드립니다.
첫째, 정면 대화보다 '옆 대화'를 시도해 보십시오. 사춘기 자녀는 마주 앉아 "우리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긴장합니다. 오히려 운전 중 조수석에 자녀를 태우고 갈 때, 함께 설거지를 할 때, 산책할 때 대화가 훨씬 잘 열립니다. 눈을 맞추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심리적 안전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시카고의 한 아버님은 토요일마다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가는 시간을 '우리만의 시간'으로 만들어 자녀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둘째, 닫힌 질문보다 열린 질문을 사용하십시오. "학교 어땠어?"라고 물으면 "그냥"이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대신 "오늘 하루 중에 가장 웃겼던 순간이 뭐였어?" "점심은 누구랑 먹었어?"와 같이 구체적이고 답하기 쉬운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셋째, 관심은 보이되 추궁하지 마십시오. "왜 요즘 친구 ○○이는 집에 안 오니?"는 취조가 되지만, "요즘 ○○이 잘 지내나 궁금하네"는 관심의 표현이 됩니다. 말 한 마디의 차이가 자녀의 반응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잔소리가 아닌 경청하기
한국 부모님들이 가장 어려워하시는 부분이 바로 '듣는 것'입니다. 자녀가 말을 시작하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조언이 나옵니다. "그건 네가 이렇게 했어야지" "엄마가 뭐랬어"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라". 그러나 사춘기 자녀는 해결책을 원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그냥 '들어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상담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은 다음과 같이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자녀를 바라봅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TV를 끕니다. "엄마 지금 듣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몸으로 전달합니다.
자녀의 말을 끝까지 듣습니다. 중간에 끊지 않습니다. 한국 부모님들은 자녀가 세 문장을 말하기도 전에 다섯 문장의 조언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들은 내용을 반영해 줍니다. "아, 오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너만 지적하셔서 당황했구나"처럼 자녀의 말을 요약해 돌려주면, 자녀는 '엄마가 정말 내 말을 들었구나'라고 느낍니다.
판단과 평가를 유보합니다. 자녀가 다 이야기하기도 전에 "그래서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라고 판단하면, 다음부터 입을 열지 않습니다.
한 가지 실천을 제안드립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자녀와 대화할 때 '조언 한 번에 경청 세 번'의 비율을 지켜 보십시오. 즉, 한 번 조언하고 싶을 때 세 번은 그저 들어만 주는 연습입니다. 놀라운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기
사춘기 자녀가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소리칠 때,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내 마음을 이해받고 싶어요"라는 외침입니다.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동과 감정을 분리하여, 행동에는 한계를 정하되 감정은 받아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딸이 "○○이가 나를 따돌려서 너무 미워! 학교 가기 싫어!"라고 울며 말할 때,
이렇게 반응하지 마십시오: "그런 걸로 학교를 안 가? 그 친구랑 화해하면 되지. 그리고 너도 뭔가 잘못한 거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이렇게 반응해 보십시오: "친구한테 따돌림을 당했다고 느꼈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엄마도 학창 시절에 비슷한 일이 있어서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처럼 먼저 감정을 받아 준 후에, 자녀가 차분해지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함께 생각해 보는 순서로 가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어떤 논리적인 말도 자녀의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전두엽이 기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학교에서는 미국 문화, 집에서는 한국 문화라는 이중 문화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부모님이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라고 하실 때 자녀가 받는 상처는 생각보다 큽니다. 자녀의 문화적 경험이 부모의 경험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문을 닫지 않는 대화의 원칙
마지막으로,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원칙 몇 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첫째, "너" 메시지가 아닌 "나" 메시지를 사용하십시오. "너는 왜 맨날 늦게 들어오니?"가 아니라 "네가 늦게 들어오면 엄마가 많이 걱정돼"라고 표현하십시오. 전자는 공격이 되지만, 후자는 부모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둘째, 화가 났을 때는 대화를 멈추십시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후회로 끝납니다. "엄마도 지금 마음이 많이 상했어. 한 시간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라고 잠시 멈추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셋째, 먼저 사과하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부모가 잘못했을 때 "엄마가 아까 너무 심하게 말했어.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모습은 자녀에게 가장 강력한 교육이 됩니다. 권위는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나옵니다.
넷째, 자녀를 위해 매일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 19:14)고 하셨듯이, 부모인 우리도 자녀의 어떤 모습이든 품을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날에도, 자녀의 침실 문 앞에서 잠시 조용히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이 결국 자녀의 마음을 엽니다.
다섯째,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를 목표로 하십시오.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위니컷(Donald Winnicott)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말했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회복하려는 꾸준한 노력입니다.
맺는 말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는 한 번의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긴 여정입니다. 오늘 자녀가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방문을 닫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문 너머에서 자녀는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는 말씀처럼, 사춘기 자녀 앞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지혜입니다. 자녀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문 앞을 지키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카고의 모든 이민 가정에 주님의 지혜와 인내가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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