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두 형제 스토리]

두 형제 스토리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으나 20년 동안이나 그들 부부는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이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태를 열어주셔서 마침내 잉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쌍태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25:21). 그런데 이 쌍둥이 형제들은 태중에서부터 이미 장자권을 두고 서로 라이벌이 되어 싸우는지라 모친 리브가는 하나님께 "어찌할까요?"라고 묻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응답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25:23)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들 두 형제들은 각기 "서로 다른 국민(nations)을 이루리라." 하셨고, 이들 두 형제들은 반드시 "나누이리라(be separated)" 말씀하셨으며, 또한 "한 족속이 더 강할 것이요 큰 자는 작은 자들 섬기리라(the older shall serve the younger)"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사도 바울은 이들 두 쌍둥이 형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이처럼 해석합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the purpose of God according to election)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9:10-1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이삭)를 통하여 하늘의 뭇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할 것을 약속하셨고 그와 같은 약속의 계승은 장자권의 축복을 통하여 계승될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이제 두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장자권 축복은 응당 장자 에서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계시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에서가 아닌 작은 자 야곱에게로 장자권 축복이 돌아가야만 한다고 하는 계시를 따라 비록 속임수라는 방편을 쓰기는 했지만 결국 부친 이삭을 속여 그의 장자권 축복을 작은 아들 야곱에게로 돌리는 일을 성공시켰습니다. 물론 야곱도 같은 행동을 따랐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브가와 야곱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를 정당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우리 인간의 불의한 방법이 개입되었을지라도 결국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결국 성취되었음을 우리에게 이해시켜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개인사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를 모두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였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 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9:19-23)

  에서와 야곱은 자신들끼리 장자권을 놓고 이를 취하려고 서로 치열하게 싸웠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작은 자를 큰 자 위에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의 씨의 축복을 계승하도록 이미 예정하셨습니다. 다만 리브가와 야곱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의지하는 대신 자신들의 육적 계략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 애셨을 뿐입니다.

  결국 훗날 에서라는 인물은 자신이 장자권 축복의 자격이 없는 자임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증명해 보여줍니다. 에서는 자신의 장자권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비 영적인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망령된 행동(profane)이란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럽히는 행동을 말합니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12:16-17)

  반면에 야곱은 영적으로 장자권 축복을 참으로 사모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만한 자임을 자신의 믿음을 통하여 증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20년간의 하란 생활을 접고 자신의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멀리 떠났을지라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의 시작이요 출발입니다. 탕자는 자신의 탕자상태 그대로 남루한 옷을 걸치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랑의 아버지는 친히 달려 나아가 다시 돌아오는 탕자를 얼싸 앉고 입을 마추며 그 아들을 측은히 여기며 사랑으로 영접합니다.

  야곱은 멀리 떠나갔다가도 결국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탕자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야곱을 맞아주시고 이스라엘(Israel)이란 새 이름을 주시고 그로 하여금 약속의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21번씩이나 "야곱의 하나님"이라 스스로 칭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야곱의 하나님은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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